
겨울왕국 2는 2019년 개봉 당시 전 세계 애니메이션 흥행 1위를 기록했습니다. 저도 개봉 첫날 극장을 찾았는데, 솔직히 1편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을지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든 생각은 '영리하다'였습니다. 디즈니는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겨울왕국을 소비해 줄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메시지에 반응하는지 말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극장에서 직접 느낀 겨울왕국 2의 성장 서사와 캐릭터 분석, 그리고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겨울왕국2> 성장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
겨울왕국 2는 처음부터 성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올라프를 통해 초반부터 끊임없이 "성장이란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여기서 성장(Growth)이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고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여정입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올라프의 대사였습니다. "성숙함이 시적으로 만드는 걸까요?"라는 질문은 너무나 철학적이었습니다. 더 이상 몸이 자라지 않는 올라프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너무나 궁금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여름을 동경했지만, 이제 그는 조금 더 어려운 내용이 궁금해집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왜 어려운지, 지금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어른이 되면 이해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엘사와 안나도 이번 후속 편에선 끊임없이 성장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엘사는 자신의 능력이 계속 자라남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에 질문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Into the unknown을 부르며 떠나는 모습은 마치 자아 찾기 여행이나 유학을 떠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자기실현이란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중 최상위 단계로,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뜻합니다.
안나는 타인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캐릭터입니다. 1편에서도 유독 안나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관계를 맺어갑니다. 방문을 닫아버린 언니를 끝없이 부르는 것도 안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서 빠져있었던 부분은 그녀 스스로의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었습니다. The next right thing은 안나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노래였습니다. 모든 관계가 끊어져 철저하게 혼자가 된 안나는 목표를 잃어버립니다. 그때 혼자서 꼭 해내야 하는 일들을 생각해 내고, 하나씩 진행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캐릭터 아크의 완성도
엘사로 떠오르는 착한 심성은 조용한 배려입니다. 이 배려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며 언니로서, 여왕으로서의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 합니다. 1편의 엘사는 자기의 의무를 자신의 존재와 저울질했습니다. Conceal, don't feel은 참 슬픈 노래가사였습니다.
2편의 엘사는 자신의 성장과 자기의 의무를 저울질합니다. 이미 자신의 존재는 찾았습니다. 하지만 자기를 이루고 있는 힘이 계속 자라남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에 질문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여왕의 직위도 버리고 자아를 찾으러 간다는 건 무책임해 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디즈니는 이 당위성을 왕국의 위기와 묶고, 예쁜 캐릭터와 노래로 혼을 빼놓으니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 떠나는 모습이 예쁘게만 보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에서 영화의 영리함이 가장 잘 드러났습니다. 서사적으로 허술할 수 있는 부분을 시각적 화려함과 중독성 있는 음악으로 완벽하게 메운 겁니다. 실제로 영화 음악 분야에서는 이를 '디제시스 음악(Diegetic music)'과 '비디제시스 음악(Non-diegetic music)'으로 구분합니다. 여기서 디제시스란 영화 속 인물이 실제로 듣는 음악을, 비디제시스는 관객만 듣는 배경음악을 의미합니다. 겨울왕국 2는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섞어 몰입도를 극대화했습니다.
안나의 성장 과정은 더욱 드라마틱합니다. 겨울왕국 2의 진정한 주인공은 안나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자신이 얼어붙는 순간까지 언니를 생각했던 동생은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동굴을 빠져나가고, 자신의 왕국을 지켜야 한다는 오롯이 자신만의 목적으로 댐을 향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안나의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가 완성되었다고 봅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크란 영화 속 인물이 겪는 내적 변화와 성장의 궤적을 뜻합니다.
올라프의 캐릭터 활용은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영원히 아이로 남아있을 것 같은 캐릭터가 성장을 꿈꾸고, 몸이 사라지며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심지어 엘사가 다시 부활시켜 준 후, 완벽한 기승전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올라프가 사라지는 순간 깨달은 건 성장이란 답을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위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게 성장이라는 걸 안 듯했습니다.
영리한 상업성과 메시지의 균형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잘 만들었다'라기보다는 '영리하다'였습니다. 애초에 겨울왕국의 첫 이야기를 관람한 우리들은 이 영화의 서사가 촘촘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독성이 있는 노래와 스벤, 올라프, 크리스토프의 유머코드와 화려한 CG, 여기에 디즈니가 생각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배합되어 적당한 이야기에도 관객들은 만족하며 영화를 소비했습니다.
여기서 정치적 올바름이란 성별, 인종, 종교 등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을 배제하고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려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디즈니는 이를 '진정한 사랑은 가족'이라는 메시지로 녹여냈습니다.
영리하게도 이 촘촘하지 않은 이야기를 굳이 겨울왕국 2에서 채우려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허술하고 비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Into the unknown'의 '아아~ 아아~'를 떠올리면 리듬이 생각날 것이고, 이를 채워주는 CG는 눈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극장에서 봤을 때도 서사의 빈틈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엔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중독성과 화려한 볼거리 제공에는 본인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2편에서도 올라프, 스벤, 크리스토프의 유머는 깔끔하게 짜여있었습니다. 올라프의 원맨쇼는 잊히지 않습니다.
디즈니는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관객이 원하는 건:
- 귀에 꽂히는 중독성 강한 음악
-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각적 볼거리
-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의 성장 서사
- 적절한 유머와 감동의 배분
이 네 가지를 완벽하게 배치하면 서사의 빈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말입니다.
겨울왕국 2는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관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제공하는 영리한 영화입니다. 엘사, 안나, 올라프 각자의 성장 서사는 충분히 사랑스러웠고, 그 모습들이 저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성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다만 다음 작품에서는 이 아름다운 메시지를 조금 더 탄탄한 서사로 담아낸다면, 진정한 명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