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2월 해외 개봉 이후 제작비 1억 2,500만 달러로 5억 5,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영화 웡카가 2024년 1월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저는 개봉 첫 주에 극장을 찾았는데, 상영관 분위기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가족 단위 관객이 대부분이었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엔딩 크레디트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프리퀄이 아니라 2005년 팀 버튼의 어두운 웡카와는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 작품이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가 만든 새로운 <웡카>의 정체성
웡카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prequel)로, 주인공 윌리 웡카가 초콜릿 제국을 세우기 25년 전 이야기를 다룹니다. 여기서 프리퀄이란 원작보다 시간상 앞선 이야기를 다루는 후속작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조니 뎁이 연기한 괴짜 웡카가 아니라, 티모시 샬라메가 구현한 청년 웡카의 순수함과 열정에 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는 이 역할에 캐스팅되기까지 에즈라 밀러, 톰 홀랜드, 라이언 고슬링과 경쟁했습니다(출처: Variety). 라이언 고슬링은 바비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나이가 문제였고, 에즈라 밀러는 사생활 논란으로 제외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톰 홀랜드도 충분히 잘 소화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샬라메의 서정적인 눈빛과 목소리는 이 역할에 딱 맞았습니다.
감독 폴 킹이 샬라메를 최종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그의 고교 시절 통계학 수업 과제 영상이었습니다. 이 영상은 현재 유튜브에서 1,200만 조회수를 기록 중인데, 당시에는 SNL 같은 프로그램에서 조롱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이 영상에서 샬라메의 숨은 가창력을 발견했고, 별도의 노래 오디션 없이 캐스팅을 확정했습니다.
영화의 음악은 순수 창작곡이 아니라 1971년 오리지널 웡카 영화의 주제가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곡들입니다. 특히 'Pure Imagination'은 세 편의 웡카 영화 모두에 등장하는 공식 테마곡인데, 샬라메 버전은 이전 버전들보다 훨씬 감미롭고 서정적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틀 동안 이 노래를 계속 흥얼거렸습니다. 움파룸파송 역시 중독성이 강한데, 휴 그랜트의 시니컬한 연기와 결합되면서 묘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휴 그랜트는 실제 키가 180cm이지만, 움파룸파는 소인족이기 때문에 모션 캡처 기술로 신체 비율을 조정했습니다. 촬영 과정에서 그는 얼굴 전체에 빨간색 마커와 카메라 장비를 부착한 채 연기해야 했고, 이 때문에 촬영장에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감독은 오히려 이런 신경질적이고 괴팍한 성격이 움파룸파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저는 이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할리우드 제작 현장의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뮤지컬 연출 세트 디자인과 AI 활용이 만든 환상의 공간
웡카의 시각적 완성도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네이단 크롤리의 작품입니다. 그는 다크 나이트, 인터스텔라 같은 블록버스터의 세트를 설계한 인물로, 웡카를 위해 높이 11m의 정사각형 세트장을 8개월 동안 건축했습니다(출처: Production Design Magazine). 이 세트는 프랑스, 밀라노, 스위스, 런던 등 유럽 주요 도시의 건축 양식을 혼합한 디자인입니다.
여기서 혼합 건축 양식(eclectic architecture)이란 여러 시대와 지역의 건축 스타일을 한 공간에 조화롭게 배치하는 설계 방식을 의미합니다. 웡카의 세트는 실제 특정 도시가 아니라 '동화 속 도시'를 구현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표지판의 언어도 중구난방이고, 배우들의 발음도 미국식과 영국식이 혼재합니다. 이는 웡카라는 인물의 존재를 더욱 판타지적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적 장치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네이단 크롤리가 세트 디자인 과정에서 AI(인공지능)를 적극 활용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유럽 건축 양식의 다양한 조합을 AI로 시뮬레이션하며 빠르게 시안을 검토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AI 사용은 배우 파업 이슈로 민감한 주제지만, 크롤리는 디자인 분야에서 AI는 훌륭한 도구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저는 이 인터뷰를 보면서 기술을 경쟁 대상이 아닌 협업 도구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실제 촬영 장소는 대부분 영국입니다. 주요 촬영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라임 레지스 항구: 웡카가 화물선을 타고 도착하는 장면
- 옥스퍼드 탄식의 다리: 기린을 타고 달리는 장면
- 바스 퍼레이드 가든: 굴다리 계단 장면
- 세인트 폴 대성당: 미스터 빈이 상주하는 성당 외관
- 래드클리프 카메라: 누들과 엄마가 만나는 도서관
웡카가 처음 연 초콜릿 가게 세트는 중앙에 벚꽃 같은 버드나무를 설치하고, 주변에 강을 두른 구조입니다. 이 공간 전체가 턴테이블처럼 회전하는데, 이는 웡카가 어머니와 배를 타고 유랑하던 추억을 재현한 설정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회전하는 공간이 주는 마법 같은 즐거움을 실제로 느꼈습니다. 2005년 팀 버튼 버전에서는 초콜릿 강과 식물을 모두 진짜 초콜릿과 사탕으로 만들어 촬영 내내 악취에 시달렸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가짜 소품에 설탕 코팅을 입혀 시각적 효과만 살렸습니다.
프리퀄로서의 오마주와 사회 비판 메시지
웡카는 1971년 오리지널 영화의 장면들을 세밀하게 오마주 합니다. 두둥실 초코를 먹고 떠오르는 3인방의 포즈, 계단에서 뒤로 물러나는 스텝, 엘리베이터 바닥에 지팡이를 꽂는 동작, 텀블링 장면 등이 모두 진 와일더의 연기를 재현한 것입니다. 웡카가 하수구에 동전을 떨어뜨리는 장면은 찰리가 그 동전을 주워 황금 티켓에 당첨되는 설정으로 이어지는 복선입니다. 저는 이런 디테일을 발견하면서 제작진이 얼마나 원작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작업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밝고 유쾌한 뮤지컬로만 끝나지 않는 이유는 사회 비판 메시지 때문입니다. 초콜릿 카르텔이 시장을 독점하고 신규 진입자를 차단하는 모습은 현대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움파룸파족이 카카오 열매 하나에 1,000배의 보수를 요구하는 설정은, 실제 원주민들이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카카오 산업의 현실을 풍자한 것입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웡카가 말도 안 되는 계약서에 사인하는 장면은 무지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똑똑한 흑인 소녀 누들과의 상호 보완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2005년 팀 버튼 버전과 비교했습니다. 팀 버튼의 웡카는 부모의 사랑이 결핍된 괴짜였고, 기괴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반면 폴 킹의 웡카는 순수하고 낭만적인 몽상가입니다. 조니 뎁의 웡카가 정서적으로 불안한 캐릭터였다면, 티모시 샬라메의 웡카는 희망과 긍정 에너지로 가득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차이는 감독의 연출 철학에서 비롯됩니다. 패딩턴 시리즈를 만든 폴 킹은 어둡고 냉소적인 유머보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선호하는 감독입니다.
다만 이 영화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뮤지컬 특유의 하이 텐션과 개연성 부족은 현실주의자들에게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일부 장면에서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이 말하듯 "모든 위대한 일은 상상에서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면, 이런 비현실성은 오히려 판타지의 매력이 됩니다.
웡카는 제게 좋은 영화란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라는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달콤한 초콜릿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꿈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가 왜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앞으로 다른 프리퀄 영화들을 평가할 때 웡카는 중요한 비교 대상이 될 것입니다. 설날 연휴에 가족과 함께 극장을 찾는다면, 웡카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안전한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