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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영화 리뷰 (세대공존, 여성CEO, 성장서사)

by kuyo 2026. 3. 23.

인턴

 

요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한 영화를 반복해서 봅니다. 바로 2015년 개봉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인턴'입니다. 이상하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감정이 교차합니다. 70대 인턴과 30대 여성 CEO라는 설정 자체가 신선하다는 평가도 많지만, 저는 실제로 여러 번 보면서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영화 <인턴> 세대공존을 그린 따뜻한 설정, 그런데 현실은?

영화는 은퇴한 70세 벤(로버트 드 니로)이 패션 쇼핑몰 스타트업 'About the Fit'의 시니어 인턴(Senior Intern) 프로그램에 지원하면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시니어 인턴이란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인턴십 제도를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은퇴 후에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노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벤은 40년간 전화번호부 회사에서 근무했던 베테랑이지만,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후 공허함을 느끼며 살아가던 중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정을 보면서 실제로 우리 사회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24년 기준 국내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는 약 712만 명에 달합니다(출처: 통계청), 이들 중 상당수가 은퇴 후 경제활동을 원하지만 적절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영화 속 벤은 회사에서 30대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의 개인 비서로 배정받습니다. 처음에 줄스는 고령의 인턴을 달갑지 않게 여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벤의 경륜과 배려에 마음을 엽니다. 이런 세대 간 화합 메시지는 분명 감동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현실에서도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세대갈등 해소에 긍정적 메시지를 준다고 평가하는데, 저는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 줄스의 개인적 문제 해결에 집중된다는 점이 신경 쓰였습니다. 인턴으로서의 업무 성과보다는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자 역할에 치중되어 있다는 겁니다.

여성 CEO 줄스, 주체적인가 의존적인가

줄스 오스틴은 창업 1년 만에 5년 목표를 9개월에 달성한 능력 있는 CEO로 그려집니다. 그녀는 직접 CS(Customer Service, 고객 서비스) 업무를 하고, 물류센터에서 포장 방법을 직원들에게 알려주는 등 현장형 리더십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CS란 고객의 불만이나 문의를 처리하는 업무를 의미하는데, 많은 스타트업 CEO들이 초기에는 이런 현장 업무를 직접 경험하며 고객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줄스의 캐릭터에는 모순이 드러납니다. 투자자들은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전문 경영인(Professional CEO)을 영입하라고 압박하고, 줄스는 이 제안 앞에서 흔들립니다. 표면적 이유는 회사의 안정적 성장이지만, 실제로는 남편 맷의 외도 문제 때문에 가정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죄책감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줄스는 분명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워킹맘(Working Mom, 일하는 엄마)이지만, 결국 남편의 외도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CEO 자리를 내려놓으려 합니다. 물론 벤의 조언으로 마음을 되돌리긴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준 의존성은 "강한 여성 캐릭터"라는 초반 설정과 어긋납니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워킹맘의 72.3%가 일-가정 양립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응답했습니다(출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줄스의 고민은 현실의 워킹맘들이 겪는 문제를 반영한 것이지만, 해결 방식이 "남성 조력자의 조언"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 줄스는 술에 취해 벤에게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지만 가족을 지키고 싶다고, 자신이 회사에 너무 몰두한 탓이라고 말입니다. 이때 벤은 손수건을 건네며 그녀를 위로하는데,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묘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왜 줄스는 스스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벤에게 의지해야 할까요?

인턴이라는 제목이 무색한 벤의 역할

영화 제목은 '인턴'이지만, 정작 벤이 인턴으로서 회사 업무에 기여하는 장면은 많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줄스의 개인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씁니다. 줄스의 엄마가 보낸 이메일을 몰래 삭제하기 위해 침입하고, 딸 페이지를 학교 행사에 데려가고, 줄스가 운전하며 미팅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기사 역할을 합니다.

벤의 이런 행동은 분명 따뜻하고 배려심 넘치지만, "인턴의 업무 범위"를 넘어섭니다. 영화는 이를 아름다운 세대 간 교류로 포장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고령 인턴에게 CEO의 사생활 관리까지 맡기는 셈입니다.

일각에서는 벤의 역할이 멘토(Mentor)에 가깝다고 평가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설정이 다소 낭만적이라고 봅니다. 멘토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후배를 이끄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보통은 같은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벤은 IT 스타트업과는 전혀 다른 전화번호부 회사 출신입니다. 물론 인생 경험은 풍부하지만, 줄스가 필요로 하는 건 사업 조언이 아니라 정서적 지지였던 겁니다.

영화 속에서 벤이 보여주는 가장 실질적인 기여는 구매 패턴 분석 정도입니다. 그는 여성 고객들이 책상 앞에서 제품을 보는 시간이 길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줄스에게 보고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깊이 있는 데이터 분석이라기보다는 관찰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만약 벤이 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이 든 여성 인턴이 젊은 여성 CEO를 돕는 설정이었다면, 관계의 역학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할머니가 손녀를 보살핀다"는 식으로 가족주의 프레임에 갇혔을까요?

영화 '인턴'은 분명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작품입니다. 저 역시 힘들 때마다 이 영화를 보며 위안을 받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가 그리는 세대공존과 여성 리더십 서사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벤과 줄스는 서로를 통해 성장하지만, 그 과정에서 줄스는 여전히 남성 조력자에게 의존하고, 벤은 인턴이 아닌 아버지 같은 존재로 소비됩니다. 현실의 워킹맘들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조언자가 아니라 구조적 지원 시스템이고, 고령 인력에게 필요한 건 감정노동이 아닌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계속 찾게 되는 건, 아마도 우리 사회가 너무 각박해서일 겁니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만큼은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겁니다. 당신도 지칠 때 벤 할아버지의 따뜻함을 빌려보는 건 어떨까요? 다만 현실로 돌아왔을 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9CCosnal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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