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를 처음 틀었을 때, 그냥 모험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명문대 졸업생이 배낭 하나 메고 알래스카로 떠나는 이야기라니,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제가 느낀 건 설렘이 아니라 묵직한 질문 하나였습니다. 나는 지금 진짜 행복한가.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인투 더 와일드는 자유, 고독, 그리고 행복의 의미를 정면으로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인투 더 와일드> 고독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알래스카의 숲 속, 버려진 버스 한 대. 크리스는 이곳에서 홀로 생존을 시작합니다. 영화 속에서 그의 생존 방식은 수렵채집(Hunter-Gatherer) 방식에 가깝습니다. 수렵채집이란 농경이나 목축 없이 자연에서 직접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집해 식량을 조달하는 원시적인 생존 방식을 말합니다. 문명 이전 인류가 수백만 년간 유지했던 방식이지만, 현대인이 갑자기 이 방식으로 생존을 시도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가장 놀란 건, 생존의 어려움이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거대한 사슴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지만, 보관 방법을 몰라 대부분을 버려야 했던 장면은 지식과 경험의 간극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책에서 읽은 것과 실제 몸으로 익힌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걸, 크리스는 혹독하게 배웁니다.
인간의 사회적 고립이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 고립은 코르티솔(Cortisol) 수치를 높이고 면역 기능을 저하시킵니다. 여기서 코르티솔이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장기간 과다 분비될 경우 심혈관 질환과 정신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출처: 미국 심리학회). 크리스의 몸이 빠르게 무너진 것도 단순히 굶주림만의 문제가 아니었을 겁니다.
행복의 의미, 여정 속 사람들이 던진 단서들
크리스의 여정이 단순한 자연 생존기가 아닌 이유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입니다. 집시 커플, 농장의 자연 친화적인 직원, 슬랩 시티에서 만난 소녀 트레이스, 그리고 솔턴 시 근처의 노인. 이 인물들이 없었다면 크리스의 이야기는 그냥 무모한 모험담으로 끝났을 겁니다.
특히 노인과의 관계가 인상 깊었습니다. 아내와 아들을 잃고 술에 빠졌다가 가죽 공예를 하며 다시 살아가는 노인을 크리스는 언덕에 오르게 합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오히려 도움을 주는 아이러니. 저는 이 장면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따뜻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건, 크리스가 자유를 찾아 떠났지만 정작 가장 살아있다고 느낀 순간들은 모두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연결감(Social Connectedness)이라고 부릅니다. 사회적 연결감이란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주관적인 느낌으로, 이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인간은 근본적인 결핍을 경험한다는 개념입니다.
크리스의 여정에서 이 연결감이 끊어졌던 순간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집시 커플과 헤어진 뒤 다시 혼자 떠났을 때
- 농장에서 일하며 소속감을 느꼈지만 알래스카에 대한 집착으로 결국 떠났을 때
- 강물이 불어나 고립되어 버스를 벗어나지 못하게 됐을 때
이 세 번의 단절이 겹칠수록 그의 몸과 마음은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독초 섭취와 죽음, 그리고 마지막 깨달음
영화의 결말은 잔혹할 만큼 조용합니다. 너무 오래 굶주린 크리스는 도감을 보며 야생 식물을 채집해 먹다가, 독이 있는 식물을 섭취하고 맙니다. 식물 독성학(Phytotoxicology) 관점에서 보면, 야생 식물 중 상당수는 형태와 성분이 유사한 독성 식물과 혼동되기 쉽습니다. 여기서 식물 독성학이란 식물이 함유한 독성 물질이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야생 생존에서 이 지식의 부재는 곧 생명의 위협으로 직결됩니다. 전문 교육 없이 야생 채집만으로 생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영화는 이 장면 하나로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기력이 다한 그가 일기에 남긴 문장이 있습니다. "행복은 나눌 때만 현실이 된다(Happiness is only real when shared)." 자유를 찾아 혼자 떠났던 사람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 연결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건, 영화가 던지는 가장 강렬한 역설입니다. 그리고 숨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 그는 가족을 떠올리며 눈을 감습니다.
크리스는 사망 후 한참이 지나서야 발견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사진과 메모를 바탕으로 존 크라카우어가 논픽션 인투 더 와일드를 출간했고, 숀 펜이 이를 영화화했습니다. 숀 펜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이 사회와 문명을 떠났을 때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에 대한 실존적 물음(Existential Question)을 던집니다. 실존적 물음이란 존재의 본질, 삶의 의미, 죽음과 자유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의미합니다. 에밀 허시의 연기와 에디 베더의 OST가 이 물음을 더욱 깊게 새겨줍니다. 사망 원인에 대한 논란도 있는데, 학계에서는 야생 감자 씨앗의 독성 성분이 유력한 원인으로 분석된 바 있습니다(출처: 국립식물독성데이터베이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인투 더 와일드는 모험 영화가 아닙니다. 자유를 향해 달려간 한 사람이 결국 타인의 온기를 그리워하며 삶을 마친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가 든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고 있나. 자유와 고독의 의미를 곱씹고 싶은 분이라면, 한 번쯤 직접 보시길 권합니다. 단, 각오하고 보셔야 합니다. 끝나고 한동안 멍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